[올림픽의 몸값] 유쾌하게, 날카롭게 풍자하는 법
이상하게 책을 가려 읽는 편은 아닌데 일본문학은 아직 많이 낯설다. 굳이 신간이 나오면 챙겨보는 작가 몇몇 중에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 이 유쾌한 글솜씨를 가진 양반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처음 만났는데, 그것도 '오쿠다월드'의 시초가 된 '공중그네'를 통해서였다. 정말이지 말도 안되게 또라이 같은 주인공이라지만, 그래도 옆에 언제고라도 만날 수 있는 이라부같은 사람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만큼 꽤 재미있게 그려내서 나도 모르게 오쿠다월드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제목이 <올림픽의 몸값>이란다. 3년만에 내놓은 장편 신작, 그리고 한창 밴쿠버의 열기로 모두가 들썩일 때, 제대로 흐름을 타고 나왔다. 하나 흠을 잡자면 옷 잘 차려입고 마지막에 단추 하나 잘못 잠근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제목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이었나.
마냥 유쾌한 줄만 알았던 오쿠다 히데오가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좀 더 진지하게, 그러나 있는 그대로 명랑한 시선을 유지했고, <올림픽의 몸값>으로 넘어오면서 조금 더 치밀해진 리얼리티와 사회성을 담고 있는 듯 하다. 테러리즘이라는 한 축을 끌어오면서 자칫 진지함이나 심각함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경계에서 오쿠다 히데오만의 풍자와 해학으로 그 만의 리얼리티를 구축해 나갔다는 건 그의 팬으로서도 색다르게 반가운 접근이었다. 실제로 그가 어느 쪽이든 편중하지 않고(이건 오쿠다 히데오가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그의 적절하게 균형잡힌 시각이랄까) 쫓기는 자와 쫓는 자를 비추면서, 한 가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했다는 점, 그래서 결국 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결말을 '안타깝게' 생각하거나 혹은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건 역시 오쿠다 히데오의 능력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1964년의 일본을 그리고 있다. 종전 후 경제적으로 몰락해가며 잿더미가 되었던 나라가 패전 19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시킬 수 있을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렇게 도쿄 올림픽은 다시 주요 선진국으로서 일본의 새출발을 의미하는 어떤 상징적인 국가적 이벤트였던 셈이다. 도쿄 올림픽을 위해 경기시설, 지하철, 모노레일, 신칸센, 수도 고속도로, 호텔, 숙박시설 등의 다양한 인프라가 건설되었다. 사람들은 변해가는 도쿄를 보며, 다시금 희망을 품었다. 일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세대들에게 올림픽은 그렇게 국가의 희망이었다. 방송국 새내기 PD인 스가 다다시의 스포츠카,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의 아파트, 여직원 고바야시 요시코가 사랑하는 비틀즈. 이 시대적 아이콘들과 어우러진 인물 캐릭터만 봐도 오쿠다 히데오 스럽다.
그렇게 처음 개최하는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떠있지만 올림픽 개최지 도쿄에 치우친 불균형한 발전, 가진 자의 편일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올림픽 개회식을 몇 일 앞두고 의문의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올림픽을 인질로 잡고 국가에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한다는 협박장이 날아든다. 때가 때인지라 사람들을 동요시킬 수 있는 일이니만큼, 안으로 밖으로 이 사건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채 범인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된다.
주인공 시마자키 구니오는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이다. 춥고 척박한 북쪽의 아키타에서 가난한 농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일본 최고의 도쿄대학에 합격한 수재이다. 어느 날 형의 죽음으로 유골을 수습하러 도쿄에 가게 되고, 형의 유골을 고향에 두고 다시 도쿄로 돌아와서는 형이 일했던 공사장을 찾아간다. 이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구니오는 소외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형도 이러한 착취 속에서 외로움과 싸워가며 죽어간 사실을 알게 되고 국가에 분노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지만, 가장 두려워하기도 하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두고 그 '올림픽'을 인질삼아 다소 무모한 싸움을 벌인다.
결과? 그래서 구니오가 싸움에서 이겼느냐고? '허무한' 결과라는 것이 그 대답이랄까. 결말이 어떻든간에 (물론 이 결말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을 사람이 좀 더 많았을테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며 구니오의 입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들, 그리고 다른 세 명의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주옥같은 문장들이 있어 잠시 옮겨 본다.
대학 나오거든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서 일본을 좀 더 좋게 만들어야지. 날마다 소금땀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집 한 채 못 가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우리의 목적은 프롤레타리아의 자격으로 잘못된 이 나라에 경종을 울리려는 거에요.
희생자를 짓밟고 이루는 번영이라면 그건 지배층만을 위한 문명이에요.
"도쿄만 부와 번영을 독차지하다니,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누군가 나서서 그걸 저지해야 합니다. 내게 혁명을 일으킬 힘은 없지만, 그래도 타격을 주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 올림픽 개최를 구실로 도쿄는 점점 더 특권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그걸 말없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뭘 원하는 거야? 돈인가?""아뇨, 평등한 사회입니다.""평등? 그런게 어디있어?"지금까지는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현하려는 것이죠."
'상실의시대 > 책도읽었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슬라이드올로지] 위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예술과 과학 (6) | 2010/03/21 |
|---|---|
| [한낮의 시선] 너와 나의 불편함과의 마주침 (2) | 2010/03/13 |
| [올림픽의 몸값] 유쾌하게, 날카롭게 풍자하는 법 (3) | 2010/03/11 |
| [서울, 북촌에서] 북촌의 일상과 역사를 만나다 (7) | 2010/01/05 |
| [프라임타임] '나'에게 '시간'을 맞추어라. (16) | 2010/01/02 |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해하는 것과 이해받는 다는 것. (0) | 2009/12/23 |





엇!!! 꼭 읽고 싶어서 신청했다가 미끄러졌던 책이네요ㅋㅋㅋ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언제나 기대감을 갖게 하는......ㅋㅋㅋ
네~ 저도 그래서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랍니다!!
저는 책 읽다가 너무 우울해져서 이거 다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읽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질 못하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