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집두번째대문]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외롭다
봄을 닮았다. 연둣빛 북 커버는 누가 생각했을까, 책을 받아들고 처음 든 생각이 그랬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비단 연둣빛 북 커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 소설은 봄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툭툭 끊기는 느낌, 그건 내게 다소 익숙치 않은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뭔가 이어질 듯 한데, 뭔가 더 이어졌으면 좋았을 법한데, 의도적으로 자꾸 끊겨지는 느낌말이다. 그렇다고 하려는 말을 빙빙 돌려 말하지도 않고, 일부러 제 옷이 아닌데도 번지르해 보이기 위해 장황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정말 남자의 일상이 그만큼 단조롭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마냥 무심한 글투가 눈에 띈다. 일상 여기 저기에서 튀어나오는 삶의 소소한 사건들도, 남자에게 있어서는 그리 특별한 존재들이 못된다. 그 남자의 삶은 짙은 회색빛 겨울 하늘을 닮아 있었다.
아내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조금은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끼고, 주변에 생기는 일들의 의미나 그 일이 흘러가는 방향을 섬세하게 감지했다. 아내가 가지고 있던 그 능력은 남자의 것과 대조되는, 앞을 내다보는 것에 대한 능력이라 해두자. 남자는 언젠가부터 이 동네에 떠도는 죽은 영혼들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것은 그에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어찌된 건 하나도 없다고, 죽은 사람을 본다고 내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내가 보기 전부터도 그들은 있었을 것 같으므로 세상도 새삼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그냥 거리에 죽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내가 그들을 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라고. 그가 낮게 읖조린다. 죽어서 도시를 떠돌며 무언가를 찾아 간절히 찾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결국은 살아있는 자들의 욕심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떠돌고 있으나, 그것은 현실을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다니는 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차피 산자와 죽은자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하등 다를 것이 없으므로.
그는 걷는다. 아내와 걷던 길도 걷고, 아내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는 놀이터도 걷는다. 동네를 걷고, 횡단보도에 쭈그려 앉기도 하고, 현실인지 상상인지 한강 다리도 건넌다. 길을 걸으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 어디 쯤에 있는지를 돌아본다. 업이 그러하기에, 늘 타인의 삶을 조명하던 그가 자신을 들여다 본다.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태인이, 봉희누나, 운동모자.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은 후회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기억과 마주하는 순간, 그 괴로움의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괴로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근원인 자신을 안아주는 것이다. 의미라는 것도 그럴지 모른다. 절망이나 깊은 슬픔으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면, 현실적 의미들이 사라진 곳에서 다른 차원의 의미가 올라온다. 자각은 갑작스러워야 자각이다, 라고 그가 말하지 않았나. 그는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진돗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아내의 말이 오래 남자의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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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외롭다.. 제목이 참 먼가 느낌이 다르네요.
책 속에 나온 문장이에요.
그 문장 하나로 이 소설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