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퀸] '어쩌다 보니' 흘러온 인생이 '어쩌다 보니' 찾아온 기회를 만났을 때.

아프니까 중년이다.

영화 <댄싱퀸>은 엄정화는 여전히 건재하며, 황정민은 능청스러움이 사랑스럽다는 걸 확인하게 해준 영화. 지극히 현실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겠지만, 나는 남편 옆에 따라다니며 시장부인 노릇하는 것 보단 너는 너 할일, 나는 나 할일 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라고 나는 <댄싱퀸>에 대한 짤막한 감상평을 트위터에 남겼었다. 영화를 본 건 지난 설날 오후. 나를 포함해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가 바로 <댄싱퀸>이었다. 코미디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정민과 엄정화라는 두 배우가 보여줄 완벽한 호흡이 기대된 것도 있었고,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상영중인 영화는 거의 다 본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던 이유도 있었다. 기대 없이 본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요즘의 코미디 영화들이 작정하고 웃기다가 작정하고 울리는 묘한 전개를 끌고 나가는데, <댄싱퀸>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웃기다가 울리는 게 반전이 아니라는 점은 내가 악평을 해댔던 <헬로우 고스트>보다는 훨씬 나았달까.

작년, 출판계의 키워드는 '위로'였다. 다들 위로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래서 그 위로를 건네던 책 들 중 하나의 제목을 조금 빌려오자면, <댄싱퀸>아프니까 중년이다, 쯤 되지 않을까. 청춘들에게 건네던 위로가 초라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것이었다면 중년들에게 건네는 위로는 일상 속에 찌들어 현재를 살아내기 바빠 꿈을 꿔볼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무기력과 권태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아니 꿈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에 너무 안주하지 말고 도전해봐요."

라고 말을 거는 영화는 비단 <댄싱퀸>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새해이기에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있어도,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진 않는다. 진부함을 없애려는 노력은 독특한 설정에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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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에어로빅 강사인 정화는 화려한 댄스가수가 되고.

돈 못 버는 인권변호사였던 정민은 민진당 서울시장후보가 되고.


'어쩌다 보니' 흘러온 인생, '어쩌다 보니' 찾아온 기회와 마주하다

'서울 시장후보의 아내가 댄스 가수' 라는 설정이다.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인권변호사 남편 황정민과 동네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일하는 아내 엄정화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올려 달라는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기엔 그다지 넉넉한 형편도 못된다. 고된 하루는 더 고되기만 할 뿐이다. 어느 날, 정민은 '어쩌다 보니' 시장후보가 되어 있고, 정화 역시 '어쩌다 보니' 우연히 댄스 가수가 될 기회를 얻었다. 문득 지금의 위치에서 과거를 회상해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그리 흘러온 인생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정민과 정화가 만나게 되었고, 시위대 속에 섞여들어가 손을 들고 있다가 함께 카메라에 찍혀 민주열사가 되었고, 다친 정민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다가 연인이 되었다. 정민은 게이 커플의 법적 상담을 해준 것으로 '인권 변호사'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떠밀려져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구해준 것이 '정의의 사도'로 알려진다. 

정민과 정화의 어렸을 때 꿈은 대통령과 가수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꿈을 접고 살던 그들에게 인생 제 2막을 여는 기회가 '어쩌다 보니' 찾아왔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는 서울시장후보가 될 꿈에 부풀어 있고, 이제는 체력도 예전같지 않은데다가 똥배까지 나온 아줌마는 댄스가수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쉽지는 않지만 간만에 가져보는 꿈에 이토록 설레는 일상이 나쁘지 않다.      

그런 그들 사이를 흔드는 위기는 정화로부터 시작된다. 남편이 서울 시장후보로 차츰차츰 지지율을 높이며 승승장구할수록, 시장후보 아내와 댄스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으로서의 이중 생활을 해야 하는 정화로서는 이런 생활이 불안하기만 하다. "아빠가 서울 시장이 되는게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서울 시장 부인이 되는게 문제야" 라며 딸에게 이야기하던 정화의 대사는 마냥 편하지 만은 않은 웃음을 준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내조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그 놈이 그 놈 같은 똥통 속 정치인들의 꼼수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는 정민의 의지가 강해질수록, 댄스 가수를 향한 정화의 꿈도 절실해진다.


꿈을 꿔보기라도 하란말야!

'서울시장후보와 댄싱퀸'이 아니라 <댄싱퀸>이라는 영화 제목만 봐도, 영화는 현실 앞에서 더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정화에게 좀 더 포커스를 둔다. 정치인들의 꼼수를 비꼬는 말과 진정성을 전하며 공감을 호소하던 정민의 말과 행동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카타르시스를 준 건 정민보다 정화였다.  

정화가 가수로 데뷔한 것을 알게 된 정민이 "제발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라!"며 윽박지른다. 정민은 이제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작은 사생활조차도 지지율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서울시장 후보다. 고상한 이미지를 가진 내조의 여왕은 커녕, 짧은 치마와 화려한 화장, 섹시한 춤을 추는 아내라니. 집안도 제대로 하나 다스리지 못한다는 삿대질이 돌아올거라며 펄쩍 뛰는 정민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많이 개방적으로 변했다지만, 아마도 실제로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거품물고 가스통에 불붙이는 어르신들도 있겠지. 그래도 정화가 "당신 꿈만 꿈이고, 내 꿈은 개똥이야?" 라고 맞받아 칠 때는, 나는 "그래, 차라리 이혼이라도 해버려!"라고 외치고 싶었다.  

특별히 스포일러 라고 할 것도 없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모진 풍파(!)를 이기고 정민은 서울시장후보가 되고, 정화도 그토록 꿈꾸던 댄스가수로 화려하게 데뷔도 한다. 정민과 정화를 보고 있자니 "꿈을 꿔보기라도 하란말야". 라던 강마에의 외침이 결코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 버릴 말은 아니었다. 꿈을 꿔보니,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용기가 생기니 절실해졌다. 이후에 정치 새내기인 정민이 서울 시장이 되었을지는, 아줌마 댄스가수 정화가 인기몰이에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인생의 어느 빛나던 순간과 조우했다는, 가슴 떨릴만큼 짜릿한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면에서 영화 <댄싱퀸>은 참 잘 계산된 영화다. 가진 건 진정성 밖에 없는 정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똥통 같은 정치판과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꼼수 같은 건 부릴 생각도 못하는 수수하고 소탈한 이미지의 정민을, 배우 황정민은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연기, 노래, 춤 부족할 것 없는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 엄정화는 데뷔 20년의 내공을 자랑하는 원조 댄싱퀸의 포스와 지고지순한 평범한 아내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황정민과 엄정화라는 두 배우의 호흡 역시 척척 맞아 떨어졌던 것도 흠잡을 데 없을 듯 하다. 웃음과 감동도 넘치지 않게 수위 조절을 잘했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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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영화중독자 칼슈레이 : 손 끝으로 보내는 당신을 향...
    • At 2012/01/31 10:15

    [댄싱퀸, 2012]&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

  1. 이번 연휴에 놓쳐서..
    주말에 꼭 봐야겠어요..ㅎㅎ

  2. 글쵸?
    제가 이걸 보려고 예매해 뒀다니 애들 아빠가 혀를 끌끌 차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기왕이면 재밌으면서 생각할 꺼리가 있는게 좋겠단 생각에 가서 봤는데요...
    즐겁게 보다 울다... 그랬답니다.

    •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 거 같아요!
      워낙 두 배우가 잘 해줘서 더 재미있지 않았나 해요!

  3. 시사회 갈 수 있었는데;ㅁ;
    그 날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취소했던...악악.
    그저 재미없는 영화들 중 하나거니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네요. 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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